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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의 날

People's Sovereignt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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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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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경상남도 마산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승만 정권이 정·부통령 선거에서 노골적인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투표 당일부터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날의 항쟁, 이른바 '3·15의거'가 없었다면 한 달 뒤 전국을 뒤흔든 4·19혁명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라는 문구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주권의 날'은 바로 이 3·15의거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제정 배경은 오래 지연되어 있었다. 3·15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었음에도 오랫동안 마산·창원 지역의 지역사 정도로만 취급받았고, 국가기념일 지정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3월 '3·15의거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지속적 요구와 관련 법 개정 노력이 결실을 맺어, 정부는 2018년 처음으로 3월 15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고 정부 주관 기념식을 마산 3·15의거탑 앞에서 열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이 기념식은 이후 매년 3월 15일 마산에서 열리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다.

1960년 3월 15일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85세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의 4선과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확실히 하기 위해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3인조·5인조 공개투표, 유령 유권자 등록 같은 방식을 총동원했다. 이에 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나섰고, 경찰의 발포로 최소 8명이 사망했다. 이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그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로 떠오르면서 전국적 분노가 폭발했고, 이것이 4월 19일 대규모 시위, 4월 26일 이승만 하야로 이어지는 4·19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국민주권의 날'이라는 명칭 자체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단순히 특정 사건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원리가 부정선거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으로 실제로 지켜졌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취지다. 다만 국가기념일이면서도 공휴일은 아니어서, 3·15의거와 4·19혁명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 격차 — 4·19는 잘 알려진 반면 3·15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현실 — 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년 기념식에서는 마산 지역 생존 의거 참가자와 유족들이 참석해 당시를 증언하며, 학계에서는 3·15의거를 4·19혁명과 분리된 독자적 민주화 운동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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