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0일, 제주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가 치러졌다. 이날 투표소에 줄을 선 유권자 중에는 만 21세 이상이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이 여성 참정권을 완전히 인정하기까지 1918년부터 1928년까지 10년, 미국이 수정헌법 19조를 통과시키기까지 70년 가까운 조직적 투쟁이 필요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반도의 첫 근대적 보통선거는 별도의 '여성 참정권 운동' 없이 남녀 동시에 도입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선거라는 제도 자체는 존재했다. 1931년부터 조선총독부는 부(府)·읍(邑)·면(面) 단위의 협의회·회의원 선거를 실시했는데, 이는 명목상의 지방자치였을 뿐 실제로는 일정 금액 이상의 부세(府稅)를 납부하는 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제한선거였다. 조선인 대다수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사실상 배제됐고, 여성은 납세자였다 해도 애초에 선거권 대상에서 제외됐다. 즉 식민지 시기의 참정권은 '조선인의 정치적 권리' 자체가 억눌린 상태였기에, 이 시기 독립운동 세력이 요구한 것은 여성 대 남성의 권리 다툼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자치권·독립이었다. 신간회 등 일부 단체 강령에 남녀평등 조항이 포함되긴 했으나, 이것이 별도의 참정권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해방 이후 상황이 급변한다. 1945년 미군정이 들어서고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이미 여성의 선거권·피선거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논의가 기울었다. 결정적인 것은 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의 감독 하에 치러진 5·10 총선거였다. 신생 독립국가의 정통성을 국제사회에 입증해야 했던 시대적 요구, 그리고 냉전 초기 자유진영 국가로서 '보통·평등선거'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형식을 갖춰야 했던 정치적 필요가 맞물리면서, 한국은 서구 국가들이 겪은 참정권 확대의 단계적 투쟁 과정을 건너뛰고 처음부터 보통선거를 채택했다. 이 선거에서 임영신 등 여성 국회의원이 당선되며 제헌국회에 여성 의석이 처음 등장했다.
다만 이것이 참정권 문제의 완전한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후 한국의 참정권 확대사는 성별이 아니라 '연령'을 축으로 전개된다. 1948년 만 21세로 출발한 선거연령은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다가,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9세로 낮아졌고, 2019년 12월 여야 합의로 다시 만 18세로 인하되어 2020년 4월 21대 총선부터 적용됐다. 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일부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사건으로, 교실 내 정치적 중립성 논란·교사의 선거운동 개입 우려 등 새로운 형태의 참정권 논쟁을 낳았다. 여기에 재외국민 참정권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 전까지 해외 거주 한국 국민은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할 방법이 없었는데, 헌법재판소가 2007년 이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면서 2012년 대선부터 재외선거가 처음 시행됐다.
결국 한국의 참정권 운동사는 '누가 투표권을 쟁취했는가'보다 '어떤 경계선이 이동했는가'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성별의 경계는 건국과 동시에 사라졌지만, 연령과 거주지의 경계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밀려났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당대의 정치적 조건을 반영한 협상의 산물이었다.
혹시 '한국은 여성 참정권 운동이 없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은 여성이 투표권을 얻기까지 70년 가까이 싸워야 했고, 영국도 10년 넘게 시위와 단식투쟁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국은 1948년 첫 선거부터 남녀가 똑같이 투표할 수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답은 일제강점기에 있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에도 '선거'라는 제도는 있었다. 1931년부터 부·읍·면 단위로 지방의원 선거가 열렸는데, 문제는 세금을 일정 금액 이상 낸 사람만 투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조선인은 가난해서 이 기준에 못 미쳤고, 여성은 애초에 후보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 조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한 건 '여성도 투표하게 해달라'가 아니라 '조선 민족 전체가 정치에 참여하게 해달라'였던 셈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3년 뒤인 1948년 5월 10일, 유엔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열렸다. 이때 새로 나라를 세우는 입장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걸 세계에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남녀 구분 없이 만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제도를 처음부터 채택했다. 서양 나라들이 몇십 년에 걸쳐 조금씩 넓혀온 권리를, 한국은 한 번에 도입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임영신이라는 여성 정치인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럼 한국 참정권 역사에는 아무 갈등도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대신 싸움의 대상이 '나이'로 바뀌었다. 처음엔 만 21세부터 투표할 수 있었는데, 2005년에 만 19세로 낮아졌고, 2019년 말에는 만 18세로 또 낮아져서 2020년 총선부터 고등학생도 투표할 수 있게 됐다. "고등학생이 정치를 알겠냐"는 반대와 "18세면 군대도 가고 일도 하는데 왜 투표는 안 되냐"는 찬성이 팽팽하게 맞선 끝에 나온 변화였다.
또 하나, 해외에 사는 한국 국민들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아무리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투표할 방법이 없었다. 2007년 헌법재판소가 "이건 불공평하다"고 판단하면서 재외국민 투표가 처음 시행됐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참정권 역사는 '누구를 투표에서 뺄 것인가'라는 경계선이 시대마다 계속 다시 그어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투표는 자기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의견을 내는 방법이야. 그런데 옛날에는 아무나 투표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 알고 있었니?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1910~1945년)에도 마을 대표를 뽑는 선거는 있었어. 하지만 세금을 많이 낸 사람만 투표할 수 있었고, 여자는 아예 투표를 할 수 없었지. 마치 반에서 준비물을 가져온 친구들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해. 대부분의 친구들은 준비물이 없어서 투표를 못 하는 거야. 정말 불공평하지?
1945년에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어. 그리고 1948년 5월 10일, 드디어 한국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큰 선거를 했단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남자든 여자든 만 21살이 넘으면 누구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거야!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여자도 투표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십 년을 기다리고 싸워야 했는데, 한국은 처음부터 "모두가 똑같이 투표한다"는 규칙을 정한 거지. 이 선거에서 임영신이라는 여성분도 국회의원으로 뽑혔어.
시간이 지나면서 "몇 살부터 투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계속 바뀌었어. 처음엔 21살부터였는데, 2005년에는 19살로, 2019년에는 18살로 점점 낮아졌지. 그래서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 형, 누나들도 투표를 할 수 있어. "고등학생도 나라 일에 관심이 있고 생각을 가질 수 있으니까 투표하게 해주자"는 어른들의 의견이 모여서 바뀐 거란다.
또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도 2012년부터는 투표할 수 있게 됐어. 예전엔 한국 국적이어도 외국에 살면 투표할 방법이 없었거든. 이렇게 "누가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규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어. 마치 처음엔 몇 명만 놀 수 있던 놀이터에, 점점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놀 수 있게 규칙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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