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년 몽골 제국의 살리타이가 압록강을 건넜을 때, 고려는 이미 40여 년 뒤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며 30년에 가까운 항쟁을 준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흔히 "몽골의 침입"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이 시기는 실제로는 여섯 차례에 걸친 전면 침공(1231, 1232, 1235, 1247, 1253, 1254~1259)과 그 사이사이의 협상, 배신, 재개를 반복한 복잡한 다자간 게임이었다.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사살한 1232년의 전투는 지금도 한국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지만, 정작 그 승리가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강화 천도 이후 최씨 무신정권은 본토를 몽골군에 내주면서도 조세는 계속 걷어야 했고, 이 시기 백성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1254년 한 해에만 몽골군에 포로로 끌려간 고려인이 20만 명을 넘었다는 기록(『고려사』)이 있을 정도다. 결국 1259년 태자 왕전(훗날 원종)이 몽골에 입조하며 사실상 항복했고, 이는 원 간섭기(1259~1356)의 시작이 되었다.
원 간섭기를 단순히 "굴욕의 역사"로만 서술하는 것은 최근 학계에서 점점 도전받고 있다. 부마국(사위 나라) 체제 아래 고려 왕실은 원 황실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고,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여러 왕이 원의 공주와 결혼했다. 이 과정에서 몽골식 변발과 호복이 고려 상류층에 유행했고("몽골풍"), 거꾸로 고려의 복식과 음식, 언어 일부가 원나라 황실에 전해지는 "고려양"이라는 역흐름도 존재했다. 만두, 소주 증류법, 설렁탕의 기원 논쟁이 이 시기와 얽혀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군사적으로는 삼별초의 항쟁(1270~1273)이 진도와 제주까지 이어지며 몽골-고려 연합군에 최후까지 저항했고, 이후 고려는 두 차례(1274, 1281)에 걸쳐 일본 원정에 강제 동원되어 함선 건조와 병력·식량 부담을 떠안았다. 두 원정 모두 태풍("가미카제")으로 실패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고려 백성의 몫이었다.
현대에 들어 두 나라의 관계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90년 3월 수교 이후 몽골은 탈사회주의 전환 과정에서 한국을 주요 개발 협력 파트너로 삼았고, 현재 국내 체류 몽골인은 3만 명 안팎, 반대로 몽골 내 한류 소비층은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울란바토르 시내 곳곳의 한국어 학원과 K-POP 콘서트 열기는 800년 전의 정복-피정복 관계와는 결이 다른, 그러나 여전히 역사적 기억 위에서 형성된 관계임을 보여준다. 일부 몽골 지식인들은 두 민족이 알타이어족이라는 언어적 친연성과 유목-농경 문명이 충돌했던 역사를 근거로 "형제 민족" 서사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는 학술적으로 엄밀히 입증된 계통보다는 정서적 유대에 가깝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고려 시대 이야기 중 "몽골의 침입"이라고 하면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그런데 이게 진짜로는 30년 가까이 이어진 긴 전쟁이었다는 거 알고 있었어? 1231년부터 1259년까지, 몽골군은 무려 여섯 번이나 고려를 침공했어.
가장 극적인 장면은 1232년 처인성 전투야. 승려였던 김윤후가 이끄는 군민들이 몽골 장수 살리타이를 화살로 쏴 죽였거든. 지금으로 치면 정규군도 아닌 지역 주민들이 적장을 잡은 셈이라 지금도 자랑스러운 승리로 꼽혀. 하지만 그 후로도 몽골은 계속 쳐들어왔고, 고려 왕실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서 40년 가까이 버텼어.
결국 1259년, 고려는 몽골에 항복하게 돼. 이때부터 약 100년간을 "원 간섭기"라고 불러. 이 시기엔 고려 왕이 몽골 공주와 결혼하는 게 관례가 됐고, 몽골식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유행하기도 했지("몽골풍"). 반대로 고려의 만두나 소주 같은 음식·술 문화가 몽골 쪽으로 전해지기도 했어("고려양"). 서로 싫어하면서도 문화는 계속 섞였던 거야.
특히 안타까운 사건은 삼별초의 항쟁이야. 고려 정부가 몽골에 항복한 뒤에도 삼별초라는 군대는 끝까지 저항했어. 진도, 그리고 제주도까지 옮겨 다니며 싸웠지만 결국 진압되고 말았지. 그 후 고려는 몽골의 요구로 일본 원정에 두 번(1274년, 1281년)이나 강제로 동원됐어. 배도 만들고 식량도 대야 했는데, 두 번 다 태풍 때문에 실패로 끝났어.
이렇게만 보면 슬픈 역사 같지만, 지금 두 나라 관계는 완전히 달라. 1990년 정식으로 수교한 이후 몽골은 한국의 중요한 협력국이 됐고, 몽골 안에서 K-POP과 한국 드라마 인기가 어마어마해. 울란바토르에는 한국어 학원도 많고, 반대로 한국에도 몽골 출신 이주민이 3만 명 정도 살고 있어. 옛날엔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서로 배우고 교류하는 관계로 바뀐 거지. 역사를 안다는 건 이런 변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힘이 되기도 해.
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에 몽골이라는 아주 강한 나라가 고려(지금 한국의 옛 이름)를 여러 번 쳐들어온 적이 있어요. 무려 여섯 번이나요! 고려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맞서 싸웠어요.
가장 멋진 이야기는 1232년에 일어났어요. 스님이었던 김윤후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몽골의 대장 살리타이를 화살로 물리쳤답니다. 군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힘을 합쳐 큰 승리를 거둔 거예요. 마치 작은 마을이 큰 괴물을 물리친 동화처럼요.
하지만 몽골은 계속 쳐들어왔고, 고려 임금님은 육지를 떠나 강화도라는 섬으로 궁궐을 옮겨서 40년 가까이 버텼어요. 결국 나중에는 고려가 몽골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약속했어요. 그때부터 두 나라 왕실은 서로 결혼도 하고, 옷이나 음식 문화도 나누게 됐어요. 예를 들면 만두나 소주 같은 음식이 이때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데 슬픈 일도 있었어요. 삼별초라는 군인들은 끝까지 싸우다가 제주도까지 가서 마지막까지 저항했어요. 그리고 몽골이 일본을 공격하려고 할 때, 고려에게 배를 만들고 병사를 보내라고 시켜서 고려 사람들이 힘들게 고생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어떨까요? 1990년에 한국과 몽골은 정식으로 친구 나라가 되기로 약속했어요. 지금 몽골에서는 한국 노래(K-POP)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에도 몽골에서 온 친구들이 3만 명 정도 살고 있어요. 옛날에는 서로 싸우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서로의 문화를 좋아하고 배우는 좋은 이웃이 되었답니다. 역사를 알면 지금의 우정이 얼마나 특별한지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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