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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발전과 한국 축구의 세계화

K League Development and Korean Football's Globalization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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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5월 8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할렐루야와 유공의 경기로 막을 올린 대회가 지금의 K리그다. 당시 이름은 '수퍼리그'였고 참가팀은 할렐루야, 유공, 포항제철, 대우, 국민은행 단 5개 구단뿐이었다. 아시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작했지만, 초창기 관중석은 절반도 채우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K리그는 연간 관중 250만 명을 넘기는 리그로 자랐고, 이 리그를 거쳐 간 선수들은 유럽 5대 리그 곳곳에서 뛰고 있다.

승강제, 리그의 체질을 바꾸다

K리그 역사에서 가장 큰 분수령은 2013년이다. 그해 처음으로 K리그1과 K리그2로 나뉘는 승강제가 도입됐고, 강원FC가 리그 최초로 강등의 아픔을 겪었다. 그전까지 K리그는 사실상 탈락 없는 리그였다. 성적이 나빠도 다음 시즌 같은 무대에서 다시 뛸 수 있었으니 시즌 막판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승강제 도입 이후 매 시즌 하위권 순위표가 곧 생존 경쟁표가 됐고, 이는 구단들이 유스 시스템과 스카우팅에 투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아시아 무대에서 증명된 경쟁력

K리그 구단들의 국제 경쟁력은 AFC 챔피언스리그 성적으로 드러난다. 성남일화(현 성남FC)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여러 차례 아시아 정상에 섰고, 전북현대모터스는 2006년과 2016년 우승, 울산현대는 2020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전북현대는 2010년대 중반 이후 K리그 최다 우승팀으로 자리잡으며 '아시아 최강 클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성적은 단순히 한 시즌의 반짝 성과가 아니라, K리그 구단들의 선수단 운영과 전술 수준이 아시아 평균을 넘어섰다는 근거로 인용된다.

해외로 뻗어나간 선수들

한국 축구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차범근이다. 그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121골을 넣었고, 1988년 UEFA컵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이후 박지성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선수도 빅클럽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근 세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021-22시즌, 살라와 공동)에 올랐고, 김민재는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을 경험한 뒤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이강인은 파리 생제르맹에서, 황희찬은 울버햄튼에서 각각 자리를 잡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K리그 유스 시스템이나 초기 프로 경력을 국내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K리그는 더 이상 '해외 진출 전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세계 무대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은 과제

물론 낙관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K리그 각 구단의 이적 수익 대부분은 여전히 해외 빅클럽으로의 선수 유출에서 나오며, 이 수익이 다시 국내 유스나 인프라에 재투자되는 구조는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 또한 K리그2와 하위 리그의 관중 동원력은 K리그1과 격차가 크고, 지방 연고 구단의 재정 자립도 문제도 꾸준히 지적된다. 2023년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운 것은 분명 고무적이지만, 이 흐름이 일시적 붐인지 구조적 성장인지는 앞으로 몇 시즌을 더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축구계 안팎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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