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건강·법률 등 민감 주제입니다. 중요한 결정 전 전문가 확인을 권장합니다. 고지·면책 안내
2026-07-09 2026-07-09 2026-07-09
목차 (5개 섹션)목차 (4개 섹션)목차 (4개 섹션)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왜 일란성 쌍둥이의 암 발병률은 다를까
2005년 스페인 국립암센터의 마리오 프라가 연구팀은 3세부터 74세까지 일란성 쌍둥이 40쌍의 DNA를 비교했다. 유전자 서열은 완벽히 동일했지만, 나이가 많은 쌍둥이일수록 DNA에 붙은 화학적 표지(메틸기)의 패턴이 서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특히 오래 떨어져 살거나 생활습관이 다른 쌍둥이일수록 차이가 컸다. 이 연구는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다"라는 후성유전학의 핵심 명제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례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후성유전학이란 무엇인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용어는 1942년 영국 발생학자 콘래드 워딩턴이 처음 사용했다.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발현을 켜고 끄는 화학적 조절 체계를 뜻한다. 대표적인 기전은 세 가지다. DNA 메틸화(시토신 염기에 메틸기가 붙어 유전자 발현을 억제), 히스톤 변형(DNA를 감고 있는 단백질이 화학적으로 수식되어 유전자 접근성이 바뀜), 비암호화 RNA(마이크로RNA 등이 mRNA 번역을 조절)다. 이 표지들은 세포 분열 시에도 상당 부분 유지되기 때문에 "후성유전적 기억"이라 불리기도 한다.
임상에서 실제로 쓰이는 약물들
후성유전학이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치료제로 이어진 첫 사례는 2004년 미국 FDA가 승인한 아자시티딘(상품명 비다자)이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 환자의 비정상적으로 과메틸화된 종양억제유전자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DNA 메틸화 억제제로, 이후 데시타빈이 뒤를 이었다. 2006년에는 최초의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HDAC) 억제제인 보리노스타트가 피부 T세포 림프종 치료제로 승인됐다. 2020년에는 EZH2 억제제 타제메토스타트가 상피모양육종이라는 희귀암에 승인되면서, 후성유전 조절 단백질 하나를 표적으로 삼는 '정밀 후성유전학 치료'의 가능성이 열렸다.
논쟁: 어디까지가 유전이고 어디까지가 환경인가
2003년 듀크대 랜디 저틀 연구팀이 발표한 아구티 생쥐 실험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후성유전학 사례다. 유전적으로 비만·황색 털을 갖도록 예정된 임신 생쥐에게 엽산과 비타민B12가 풍부한 식단을 먹이자, 새끼 세대의 털색과 체형이 정상으로 바뀌었다. 이 결과는 "음식으로 유전자 발현을 바꿀 수 있다"는 대중서적의 단골 소재가 됐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이 결과가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네덜란드 기근(1944~1945) 당시 임신부의 자녀 세대에서 성인기 비만·심혈관질환 위험이 높게 관찰된 코호트 연구도 후성유전적 대물림 가설의 근거로 자주 제시되지만, 실제 메틸화 변화가 손자 세대까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론이 있다. 후성유전 치료제의 가장 큰 난제도 여기서 나온다. DNMT·HDAC 억제제는 특정 유전자만 골라 조절하지 못하고 게놈 전반의 메틸화·아세틸화 상태를 광범위하게 바꾸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유전자까지 활성화시켜 부작용이나 이차암 위험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다음 단계: CRISPR 기반 후성유전 편집
최근 연구는 DNA 서열을 자르지 않고 특정 유전자의 발현만 정밀하게 조절하는 'CRISPR 후성유전 편집(epigenome editing)'으로 옮겨가고 있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의 연구팀은 2021년 죽은(비활성화된) Cas9 단백질에 메틸화 효소를 결합시켜, 콜레스테롤 관련 유전자 PCSK9의 발현을 생쥐 실험에서 장기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전자를 영구히 잘라내는 대신 스위치처럼 껐다 켤 수 있다는 점에서, 되돌릴 수 없는 유전자 편집보다 안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아직 대규모 인체 임상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똑같은 DNA를 가진 쌍둥이가 왜 다른 병에 걸릴까
일란성 쌍둥이는 DNA 서열이 100% 똑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한쪽은 암에 걸리고 다른 쪽은 걸리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2005년 스페인 연구팀이 3살부터 74살까지 쌍둥이 40쌍을 조사했더니, 나이가 많고 생활 방식이 다른 쌍둥이일수록 DNA에 붙은 '화학적 스티커'의 위치가 서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이 스티커가 바로 후성유전학이 다루는 대상이다.
유전자 설명서에 붙는 포스트잇
DNA를 요리책이라고 생각해보자. 후성유전학은 요리책의 글자(유전자 서열) 자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어떤 페이지를 펼쳐서 요리할지, 어떤 페이지는 아예 넘겨버릴지를 정하는 포스트잇 같은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DNA 메틸화'라는 화학 표지가 특정 유전자 위에 붙으면 그 유전자는 꺼진 것처럼 작동을 멈춘다. 담배 연기, 스트레스, 식습관 같은 환경 요인이 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떼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게 여러 연구로 확인됐다.
실제로 병을 고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원리는 이미 병원에서 약으로 쓰이고 있다. 2004년 미국에서 승인된 아자시티딘이라는 약은 골수의 병(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에게서 잘못 붙어버린 메틸화 표지를 떼어내 정상 유전자가 다시 작동하도록 돕는다. 2006년에는 히스톤이라는 DNA를 감고 있는 실패 모양 단백질을 조절하는 보리노스타트라는 약이 피부 림프종 치료제로 나왔다. 2020년에는 희귀 근육암에 쓰이는 타제메토스타트가 승인됐다. 모두 유전자 서열을 자르지 않고,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만 조절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중요할까
이게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이 유전자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정상 유전자가 '잘못 꺼져 있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려준다. 둘째, DNA 자체를 영구히 바꾸는 유전자 가위(CRISPR)보다 되돌리기 쉬운 치료법을 만들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로 2021년 미국 연구팀은 DNA를 자르지 않고 특정 유전자의 스위치만 끄는 새로운 기술을 생쥐 실험에서 성공시켰다. 다만 아직 사람에게 널리 쓰이려면 더 많은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같은 씨앗인데 왜 다르게 자랄까
똑같은 나무 씨앗 두 개를 심어도, 하나는 햇빛 잘 드는 곳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다른 하나는 그늘에서 약하게 자랄 수 있어요. 씨앗 안의 설계도(DNA)는 완전히 똑같은데 말이죠. 사람도 비슷해요. 일란성 쌍둥이는 DNA가 100% 똑같지만, 어른이 되면 한 명만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유전자에 붙는 포스트잇
우리 몸속 DNA는 아주 긴 요리책 같아요. 그 안에는 우리 몸을 만드는 방법이 다 적혀 있죠. 그런데 이 요리책의 어떤 페이지는 펼쳐져 있고, 어떤 페이지는 접혀서 안 보이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페이지를 펼치거나 접는 걸 '후성유전'이라고 불러요. 글자를 지우거나 바꾸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부분을 쓸지 안 쓸지 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잠자는 습관,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이 페이지를 펼치고 접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대요.
아픈 걸 고치는 데도 쓰여요
의사 선생님들은 이 원리를 이용해서 약도 만들었어요. 몸속에서 잘못 접혀버린 페이지를 다시 펼쳐서, 원래 있어야 할 정상적인 유전자가 일하게 도와주는 약이에요. 2004년에 미국에서 이런 약이 처음 병원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여러 종류의 병에 쓰이고 있어요.
왜 신기할까요
가장 신기한 점은, DNA 글자 자체를 자르거나 바꾸지 않고도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치 책의 내용을 지우지 않고 그냥 접힌 페이지만 다시 펼쳐주는 것처럼요. 과학자들은 요즘도 이 '페이지 접고 펼치기' 기술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 방법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서 정보
최초 작성
최종 갱신
분류
의료
HANGUL.WIKI가 정리·작성한 문서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공식 출처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의 오류나 정정 요청은 오류·정정 신고로 알려주시면 검토 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