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8 Commemoration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 Divide
금융·건강·법률 등 민감 주제입니다. 중요한 결정 전 전문가 확인을 권장합니다. 고지·면책 안내
2026-07-07 2026-07-07 2026-07-07
목차 (0개 섹션)목차 (0개 섹션)목차 (0개 섹션)
1997년 김영삼 정부가 5월 18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을 때만 해도, 이 날이 20년 넘게 정치권의 뇌관으로 남을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분명 국가가 공인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매년 5월이 되면 대한민국은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하는 두 개의 나라처럼 갈라진다.
가장 상징적인 충돌은 노래 한 곡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광주에서 만들어져 이후 5·18 기념식의 사실상 공식 제창곡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 노래를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제창' 대신 합창단만 부르는 '합창'으로 격하시켰다. 보훈처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유가족 단체와 야권은 이를 5·18 정신 자체를 격하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였다. 결국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첫 기념식에서 제창 방식이 부활했고, 대통령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더 심각한 균열은 사건 자체의 성격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이다. 극우 논객 지만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5·18 당시 시위대 다수가 북한에서 남파된 특수부대원("광수")이라는 주장을 사진 분석을 근거로 반복 제기했다. 이 주장은 여러 차례 법정에서 명예훼손으로 패소했고 학계에서도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정리됐지만, 일부 보수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꾸준히 재생산됐다. 이런 흐름에 대응해 2020년 12월 국회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5·18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진상규명 작업도 정치 지형에 따라 속도가 달랐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시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해 계엄군의 헬기 사격 여부, 행방불명자 규모, 발포 명령 체계 등을 조사했다. 2023년 조사위는 활동을 종료하며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민간인 암매장 의혹 등을 공식 확인했지만, 발포 명령자 규명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았다.
명칭 자체도 진영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공식 명칭은 '5·18민주화운동'이지만 참여자와 진보 진영은 '광주항쟁' 또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반면, 신군부 옹호 세력은 과거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고수했었다. 이런 명명 방식의 차이는 단순한 어휘 선택이 아니라 사건을 저항으로 볼 것인가, 소요 사태로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 역사 해석의 차이를 드러낸다.
결국 5·18은 법적으로는 국가가 공인한 민주화운동으로 확정됐음에도, 매년 기념식 참석 여부, 노래 제창 방식, 왜곡 처벌법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이 재점화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과거사가 완전히 봉합되지 못한 채 현재 정치의 프레임 속에서 계속 소환되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뉴스에 똑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어떤 정치인은 광주에 가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 노래가 왜 문제냐고 따진다. 대체 무슨 일일까?
1980년 5월, 전두환 등 신군부가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으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맞서 일어섰다.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고, 정부 공식 집계로도 수백 명이 숨졌다. 이 사건이 바로 5·18민주화운동이다. 1997년 정부는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광주에서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원래는 기념식에서 참석자 모두가 함께 불렀다. 그런데 2009년부터 2016년까지는 정부가 "다 같이 부르지 말고 합창단만 부르게 하자"고 방침을 바꿨다. 유가족들은 크게 반발했고, 결국 2017년에 다시 다 같이 부르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노래 하나를 두고 이렇게 오래 싸운 이유는, 그 노래가 5·18을 얼마나 존중하느냐를 상징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논쟁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그때 시위대는 사실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이 주장은 법원에서 여러 번 명예훼손으로 판결났고 근거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인터넷에서는 계속 떠돌았다. 그래서 국회는 2020년에 법을 만들어, 5·18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리면 처벌받도록 했다.
이렇게 5·18은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데도,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사건을 어떻게 부르는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두고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계속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를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현재의 정치 싸움과 겹쳐 있다는 점에서, 5·18은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도 불린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다 같이 부르는 노래가 있나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이제부터 노래는 몇 명만 부르고 나머지는 듣기만 하세요"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큰 일이 있었어요. 군인들이 힘으로 나라를 차지하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그러면 안 된다"며 거리로 나와 반대했어요. 그런데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고,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어요. 이 일을 '5·18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요. 지금은 나라에서 정한 기념일이 되어서, 해마다 5월 18일에 광주에서 큰 기념식을 열어요.
그 기념식에서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이름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에요. 원래는 참석한 사람들이 다 같이 불렀는데, 어떤 때는 정부가 "몇 명만 부르라"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속상해했어요. 나중에는 다시 다 같이 부를 수 있게 됐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그때 광주에 있던 사람들은 사실 다른 나라 군인이었다"는 이상한 거짓말을 퍼뜨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법원에서 조사해 보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5·18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법도 만들었어요.
이렇게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지를 두고 다툼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만큼 5·18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고, 또 아직도 완전히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은 사건이랍니다.
문서 정보
최초 작성
최종 갱신
분류
역사·정치
HANGUL.WIKI가 정리·작성한 문서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은 공식 출처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의 오류나 정정 요청은 오류·정정 신고로 알려주시면 검토 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