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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화유산 보존과 경주 관광 산업 재생

Silla Cultural Heritage Preservation and Gyeongju Tourism Revitalization

2026-06-29
목차 (9개 섹션)

경주는 도시 자체가 유물이다. 신라 천 년의 왕도였던 이 땅에는 고분 23기가 시가지 한복판을 차지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구역이 행정 구역과 겹쳐 있으며, 문화재 보호구역이 도시 면적의 절반을 넘는다. 개발과 보존이 단순한 대립을 넘어 일상의 갈등이 된 곳이 바로 경주다.

유산의 무게

땅 아래의 경주

경주 도심에서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놓으려면 반드시 문화재 표본 조사가 선행된다. 2023년 경주시 발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건축 인허가 신청 건수 중 약 38%가 문화재 출토 가능성을 이유로 착공이 지연됐다. 실제로 2021년 황남동 재개발 구역 굴착 과정에서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와 기와 편이 대량 발굴돼 공사가 14개월 중단된 사례가 있다. 주민들에겐 생계와 주거환경의 문제이고, 고고학자들에겐 불가역적 훼손을 막아야 할 의무의 문제다. 두 입장 사이의 조율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존 체계의 현주소

경주 문화유산의 보존 체계는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국보·보물급 유산, 경주시가 관리하는 사적·명승, 그리고 민간이 보유한 불법 발굴 방지 대상지가 그것이다. 문화재청은 2019년부터 '경주 역사유적지구 종합정비계획'을 시행 중이며, 2030년까지 총 4,200억 원을 투입해 대릉원·월성·황룡사지·남산 등 4개 권역의 정비와 발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보존 예산의 실질 집행률은 해마다 과제로 지적된다. 2022년 감사원 보고서는 경주 지역 문화재 수리 보수 예산의 집행률이 71.3%에 그쳤다고 밝혔다. 전문 인력 부족과 지역 업체의 시공 역량 한계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관광 산업의 구조적 변화

야간 관광의 부상

경주 관광은 2010년대 중반까지 '수학여행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경주 방문객의 평균 체류 시간은 4.2시간으로, 당일치기 패턴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바꾼 것이 야간 경관 조명 사업과 황리단길의 부상이었다.

황리단길은 황남동 주민 골목길을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됐다. 2016년부터 카페와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해 2019년에는 연간 방문자 300만 명을 넘어섰다. 경주시는 이 흐름에 올라타 2018년부터 '야간 특화 관광 사업'을 본격화했다. 대릉원 야간 개방, 첨성대 미디어파사드, 동궁과 월지(안압지) 야경 패키지가 연결되면서 1박 2일 체류 관광객 비율이 2015년 23%에서 2023년 41%로 높아졌다.

한계와 과부하

성공적인 부활처럼 보이지만 과부하의 문제도 뚜렷하다. 황리단길은 현재 임대료 급등으로 초기 입주 소상공인들이 이탈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진행 중이다. 2023년 경주상공회의소 조사에서 황리단길 소재 업체 중 창업 5년 이상 된 원주민 사업체는 전체의 11%에 불과했다. 문화재 구역 인근 주차 문제도 심각해, 대릉원 인근 주거지에서는 주말마다 불법 주정차로 인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관광 편중도 문제다. 방문객의 75% 이상이 대릉원-황리단길-첨성대-동궁과 월지의 4개 거점에 집중되며, 남산 마애불이나 양동마을 같은 분산 자원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재생의 방향

발굴과 전시의 연결

월성 해자 발굴(2016~현재)은 보존과 전시를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발굴 현장에 유리 데크를 설치해 관람객이 진행 중인 발굴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했다. 2023년 방문자는 약 18만 명으로, 단순 유물 진열 방식을 넘어선 '살아있는 발굴'의 가치를 증명했다.

황룡사지 복원 논의도 재점화됐다. 1980년대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9층 목탑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가 2024년 착수됐으며, VR·AR 콘텐츠로 '사라진 거대 건축'을 간접 체험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물리적 복원 대신 디지털 복원을 선택한 것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고증 오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결정이다.

지역 사회와의 공존

보존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효하려면 지역 주민의 동의가 필수다. 경주시는 2022년부터 '문화재 구역 주민 협약 사업'을 시행해, 문화재 보호구역 내 주민에게 건물 수리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경관 협약을 맺는 방식을 도입했다. 참여 가구는 2024년 기준 480여 가구로, 초기 참여율은 낮았으나 보조금 규모 확대 후 증가세를 보인다.

경주의 사례는 문화유산 도시의 보편적 딜레마를 압축해 보여준다. 유산이 풍부할수록 개발은 어렵고, 관광이 성공할수록 유산의 진정성은 위협받는다. 이 역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경주가 '살아있는 역사도시'로 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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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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