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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망의 지정학적 재편과 한국의 위치

Semiconductor Supply Chain Geopolitics and Korea's 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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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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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대만 TSMC의 애리조나 공장 3기 증설 소식이 나올 때마다 서울 여의도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전화기는 불이 났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3분의 2 가까이를 점유한 TSMC가 미국 땅에 5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까지 옮기겠다고 하자, "그럼 한국은 뭘 갖고 버티나"라는 질문이 반복해서 튀어나온 것이다. 반도체는 더 이상 그냥 잘 팔리는 부품이 아니다. 미국은 이걸 안보 자산으로, 중국은 이걸 굴복시켜야 할 급소로 본다. 한국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이야기는 2022년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본격화됐다. 527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걸고 미국은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에 "미국 안에 공장을 지어라"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지었고, 2026년 현재 가동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게 "가드레일 조항"을 걸어,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생산능력을 5% 이상 늘리지 못하게 못박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시안(삼성 낸드)과 우시·다롄(SK하이닉스 D램·낸드)에 이미 지어놓은 중국 공장을 운영하면서 미국 보조금도 받아야 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수출통제라는 또 다른 축이 겹친다. 미국 상무부는 2022년 10월과 2023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했고, 이는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 제한으로 이어졌다. 한국 기업들은 한동안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지위를 받아 중국 내 공장에 장비 반입 예외를 인정받아 왔는데, 이 지위가 갱신될 때마다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2025년 말 기준으로 이 예외 조치는 유지되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정치적 협상 카드로 거론된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한국의 위치를 정확히 보려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구분해야 한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합쳐서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 강자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서버용 GPU에 필수적인데,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며 2024~2025년 실적을 견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파운드리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점유율은 TSMC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고, 3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수율 경쟁에서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정학적 재편의 핵심은 "탈중국"이 아니라 "분산"이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완전히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희토류·갈륨·게르마늄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정제 능력은 여전히 중국에 편중되어 있고, 중국은 2023년과 2024년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실제로 발동하며 이 카드를 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규범을 따르면서도 중국 공장을 완전히 접지 않는 '헤징' 전략을 취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이 재편이 한국에 기회라고 본다. 일본이 라피더스를 앞세워 2나노 파운드리에 재도전하고, 미국이 인텔 파운드리를 국가전략 자산처럼 취급하는 지금, 오히려 각국이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급조하려다 인력난과 비용 문제에 부딪히는 사이 한국의 축적된 양산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비관론자들은 보조금 경쟁이 결국 각자도생의 소모전으로 흐르고, 한국은 미중 양쪽에서 정치적 압박만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거라 우려한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향후 5~10년 사이 HBM 다음 세대 기술 경쟁과 파운드리 수율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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